컨셉진 레터 ISSUE.01 안녕하세요. 컨셉진 편집장 김경희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컨셉진이 발행되지 않았던 지난 6개월 동안 잘 지내고 계셨나요? 저는 12월 31일 여러분께 휴간 소식을 전하고 나서 먹먹한 마음이 계속되어, 꽤 오랫동안 밤잠을 설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휴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속상함과 이 소식을 여러분께 전해야 하는 괴로움, 저희의 소식에 기다리겠다 해주시는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까지. 수많은 감정이 마음을 오갔거든요. 그래도 저희를 믿고 기다려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컨셉진 재발행
확정과 함께 뉴스레터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 컨셉진이 재발행되는 9월 27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주말에 읽을거리 하나씩 드린다’는 마음으로 제가 직접 레터를 작성하여 여러분께 전달드리려 합니다. 이 뉴스레터에서는 컨셉진의 과월호 콘텐츠와 제작 스토리를 함께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저희의 지난 10년의 세월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컨셉진은 2012년 8월 애플리케이션 전용 매거진으로 시작해 10호까지 발행된 후, 11호부터 책 버전으로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종이책 버전으로 처음 발간된 <컨셉진 11호>에 담긴 이야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Editor’s Letter 모바일 전용 매거진으로 시작한 컨셉진이
세상에 나온 지 10회 만에 종이 잡지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1년 전 컨셉진을 만들 때에는 디지털
매거진의 새로운 시장을 보았기에 종이 잡지 발행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열 번의 마감을 치르면서 손에
잡히는 무언가에 욕심이 생겼고, 실물로 소장하고 싶다는 독자분들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컨셉진 애플리케이션을 처음 발행했던
그때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종이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컨셉진 앱 버전도 개편했습니다. 2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휴간을 하면서
우리 매거진의 장점과 단점,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대대적인 수정을 한 것입니다. 물론 시즌 1의 가치는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매거진을 만들고자
한 우리의 바람대로 많은 독자분들이 컨셉진을 보며 행복해 해주시고, 좋아해 주셨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동안은 광고를 받아 운영했기에 정작
소개하고 싶은 제품을 소개할 수 없었고, 반대로 우리와 어울리지 않은 제품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청춘을 돕는 매체가 되겠다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부분 때문에 늘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리하여 앞으로는 광고상품이 아닌 우리가
정말 소개하고 싶은 제품을 마음껏 소개하고, 그 대신 그 제품을 직접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종이 잡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한 달에 한 번 청춘의 꿈을 이루어주는 [해바드림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청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돕고자 나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 책과 앱을 통해
청춘의 꿈을 응원하는 잡지 컨셉진, 그리고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컨셉팟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청춘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컨셉진의 뜻에 동참해주세요.
편집장 김경희
이 뉴스레터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펼쳐본 컨셉진 11호에서 발견한 편집장 레터입니다. 컨셉진을 창간했을 때 제 나이가 스물여섯이었기에, 그때는 ‘청춘’에 집중했습니다. 컨셉진의 슬로건도 ‘당신의 청춘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였고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제 또래의 청춘들이 컨셉진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그 대상이 조금 더 넓어지더라고요. : ) 이 편집장 레터를 읽으면서, 대상은 확장되었지만 콘텐츠를 통해 이 세상의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과 독자분들에게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자, 하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아… 나는 참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어 헛웃음도 났고요. 그런데 왠지 이 사실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어요. 제가 이런 고집을 가진 사람이기에, 여러분의 삶에 조금 더 도움이 될 콘텐츠 만드는 데에 진심을 다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많은 분의 사랑을 받게 된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저 스스로 ‘잘했다!’ 칭찬 좀 해주겠습니다. 으쓱. 빈 그릇의 행복, 박오성의 꿈 해바드림 프로젝트에 지원한 많은 신청자
중, 박오성을 뽑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겐 소박하지만 담담하고, 어딘지 모르게 거칠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의 꿈에 우리의 작은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에디터 김경희 포토그래퍼 강석균 #꿈을 꾸다
초등학교 때부터 라면 끓이기, 계란후라이를 직접 하는 것은 기본이고, 요리전문채널을 유난히 자주 봤어요. TV 속 음식을 보고, 실제로 만들고, 그리고 먹기까지 ‘조리’에 관한 모든 것이 좋았거든요. 조리 고등학교를 목표로 중3 때 요리학원에 등록했고, 자격증 준비를 했어요. 결국, 조리를 전공으로 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죠. 학교에서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제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요. ‘내가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은 것처럼 나 또한 조리사를 꿈꾸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까?’하고 말이에요.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끌어준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세상에 없던 기적을 만들어 보고자 ‘조리교사’라는 목표를 세웠죠. #꿈을 위해 걸어온 길
고3, 입시를 앞두고 수업이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잘 짜여있는 우송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수시 전형에서 두 번 떨어졌고 원치 않은 대학에 입학하게 됐죠. 당시 미니홈피를 통해 우송대에 입학한
친구들을 보며 ‘나도 저기 있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마냥 부러웠어요. 그래서 결국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를 준비했어요. 재수하면서는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하고 밤 10시까지 공부를 해야 했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했던 그 시기는 정말
힘들었죠. 이렇게 힘들게 준비했지만, 두 번의 수시 모두 떨어지고 말았어요. 결국, 네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 입대를 해야만
했죠. 조리 실습은 군대에서부터 진짜 시작이었어요. 높은 간부님을 모시는 취사병으로 가게
됐거든요.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하루 세끼를 해야 했어요. 매달 요리책과 잡지를 구독해가며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많이 성장하고 발전한 것 같아요. 그러다 제대가 가까웠을 때쯤, 계속 떨어졌던 우송대학교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지원했어요. 군인의 신분으로 군복을 입고 면접을 보았는데, 결국엔 제가 그토록 원하던 우송대학교
학생이 됐어요. 현재는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해 1년 동안 거의 학교, 집,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1학년 성적이 좋아야 교직 이수의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뿐만 아니라 어학시험, 각종 자격증 시험 등을 통해 스스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꿈을 향해 가는 길의 즐거움
조리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조리를 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는데,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게 이런 맛을 낼 수도 있구나!’ 혹은 ‘이렇게 하면 어떤 맛을 낼까? 어떤 조합을 이룰까?’ 생각하는 재미가 있어요. 무엇보다 조리의 행복감은 제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는 데 있죠. 군대에서 제가 모셨던 간부님께서는 무뚝뚝하신 분이라 잘 먹었다거나 맛있었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어요. 그 대신 빈 그릇으로 대답해주셨죠. 두세 시간 공들여 만든 음식을 빈 그릇으로
내어주실 때 “아 맛있게 드셨구나”하는 마음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꿈을 위한 도전 ‘영 쉐프 챌린지’
제가 이번에 참가하게 된 ‘영 쉐프 챌린지’는 세계조리사연맹과 한국조리사회중앙회가
주최하는 글로벌 대회예요. 4년에 한 번 나라별로 돌아가며 열리는 이 대회는 굉장히 큰 자리기 때문에 국내에서 하는 작은 대회들보다
큰 메리트가 있을 테고, 상을 받지 못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준비하면서 식재료에 대해서, 그리고 플레이팅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갈
수 있고, 다른 출전자들의 작품을 보면서 세계적
트렌드도 배울 수 있겠다 싶었죠. 사실 처음엔 대회에 대한 정보도 없이 교수님의 권유로 참가신청서를 내게 되었어요.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몇 번의 좌절이
찾아왔죠.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은 거예요. 제가 만들 음식의 식재료부터 조리도구의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어요. 빌릴 수 있는 도구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빌리고 구할 수 없는 건 부모님께 도움을 받으려던 참이었어요. “막연한 희망으로 지원한 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역시 도전이란 것은 일단 지르고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컨셉진 해바드림 프로젝트를 만나다
시험기간에 공부하다 너무 집중이 안
되길래 평소 잘 하지도 않던 페이스북을 열어봤어요. 그날이 마침 컨셉진 해바드림 프로젝트 지원 마지막 날이었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컨셉진이란 것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제 사정을 아는 친구가 제게 신청해보라며 태그를 해준 거예요. 시험 공부가 워낙 안 됐던 터라 핑계
삼아 지원서를 작성했죠. 저를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은 모두 말렸어요. 공부나 하라고, 그런 게 되겠느냐고. 대회 준비 비용이 너무 부담되었던 저는
정말 간절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그런데 웬걸. 다음날 제가 1차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물론 그날 시험은 망쳤지만요. PPT에 적혀있는 항목을 작성해서 보내는 2차 지원서는 모든 시험이 끝난 뒤 PC방에 가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썼어요. 더 정성껏 써서 보냈어야 했는데 시험이
끝나고 마감까지 3시간밖에 남지 않아 좀 부족하게 쓴 거 같아 마음이 걸렸어요. 그랬는데, 그랬는데도 제가 됐어요! 막연한 희망으로 지원한 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역시 도전이란 것은 일단 지르고 봐야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되지 않았어도 컨셉진에게
고마워했을 거예요. 덕분에 제 꿈에 대해서 좀 더 세밀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꿈이 좀 더 확실해졌으니까요.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도 사실 믿기지
않아요.
#영 쉐프 챌린지를 마치고
사실 처음에는 조금 부푼 기대를 안고
왔는데, 제가 대회의 첫 참가자라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실수도 많았고. 연습한 거에 비해 잘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실망스러워요. 그래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즐겼기 때문에
후회는 안 하려고요. 저 혼자 이 모든 걸 했다면 많이 어려웠을 텐데, 친구들도 많이 도움을 줬고 대회 참가에
필요한 비용 일체를 컨셉진에서 지원을 해주셔서 부담 없이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이번 대회를 통해 세상에 요리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한, 제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요리를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어요. 오늘을 계기로 꿈을 향해 더 열심히
나아가보려고요. #나에게 꿈이란?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꿈이란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간절히 바라고, 하게 되면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할 땐 모든 게
싫고 짜증 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할 땐 더 잘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죠. 좋아하는 일이라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면 좋겠다 싶은 계획이
생기고 그 계획이 발전해서 꿈이 되는 것 같아요. 결국, 꿈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죠.
#내가 생각하는 청춘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시기.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찾고, 그게 어떤 것이든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실패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청춘의 모습 아닐까요? 어떠신가요? 9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 당시의 열정과 순수한 마음이 여전히 잘 느껴지지 않나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해바드림 프로젝트]는 수익금의 일부를 청춘 한 명의 꿈에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는데요. 사실 초창기 컨셉진은 수익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서 비용을 일부러 마련하는 상황이었어요. 수익도 없는 주제에, 베풀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거죠.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스스로 컨셉진을 만드는 취지를 잃지 않고, 또 독자분들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잘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권오성 님이 하신 “역시 도전이란 것은 일단 지르고 봐야 하는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처럼 우리 독자분들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될까 싶어 해봤는데, 이게 되네? 도전, 할 만하네?’라는 생각을 얻길 바랐어요. 역시나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10회도 안 돼 그만두게 되었지만, 저는 지금 돌아봐도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여기 등장한 권오성 님, 이후에 싱글 앨범 제작비를 지원받은 싱어송라이터, 엄마와 함께하는 제주도 여행비를 지원받은 대학생, 또 실크스크린 장비 구매비를 지원받아 브랜드로 성장한 ‘와일드 브릭스’ 등. 이분들이 저희를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저희는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일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좀 더 만들어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해보고 싶고요.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앞으로 독자분들과 하고 싶은 것, 독자분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편인데요. 어느 날 제 얘기를 듣던 친구가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경희야, 네가 얘기하는 이런 거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고, 다 좋은데…, 이런 건 큰 기업에서 사회 공헌 활동으로나 할 법한 일들이야. 너희 같은 작은 규모에서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쓸 생각을 하니깐 네가 힘든 거지.” 그때 잠깐 현타가 오더라고요. 제가 제 그릇에 비해 너무 큰 걸 생각했구나, 싶어서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큰 기업이 되거나, 아님 우리의 뜻에 동참하는 큰 기업을 찾으면 되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저는 정말 ‘못 말리는 고집쟁이’입니다.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컨셉진을 휴간하기까지 했지만, 컨셉진 독자들에게 더 많은 걸 주고 싶은 마음, 나아가 컨셉진과 미션캠프를 통해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이 변치 않는 마음으로 잘 준비하여, 더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께 찾아가겠습니다. 그때까지 매주 이렇게 만나며 더 가까워져요, 우리! 😘 그럼 저는 오늘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다음주에 다른 이야기를 찾고 찾아뵐게요! 컨셉진 레터와 함께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편집장 김경희 드림. Ps. 돈은 많은데, 어떻게 써야 의미 있게 잘 쓰는 건지 모르시는 분, 혹은 기업 담당자님 계신가요? 그렇다면 저희를 찾아주세요! 아주아주 재미있고 의미있는 프로젝트에 쓰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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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