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집장 김경희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울릴 만한 콘텐츠를 가지고 왔어요. 컨셉진 41호에 실렸던 '크리스마스 설레발'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여러분 혹시 컨셉진 96호까지 있었던 TASTE 코너를 알고 계시나요? 이 코너는 약 38호쯤인가부터(?) INSIDE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TASTE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꼭지인데요. 컨셉진에 새로 입사한 경력직 에디터가 제안하여 신설된 코너였어요. 가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데, 컨셉진 주제와 안 맞거나 컨셉진에 있는 기존 코너에 넣기엔 애매한 소재들이 있다. INSIDE라는 이름의 코너를 개설해 형식을 정해놓지 않고, 그런 소재들이 있을 때마다 번외처럼 이야기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죠. 고정된 꼭지로만 구성된 컨셉진에 이런 코너가 추가되면(주제와는 맞지 않지만), 독자분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받는 '별책부록'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 만들게 되었습니다. 추후에 개편을 통해, '에디터의 취향'이라는 의미를 반영해 TASTE라고 이름만 변경했고요.
이 코너를 제안한 에디터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만들었던 기사를 공유하려고 해요. 지금으로부터 딱 6년 전에 만들어진 기사네요. 그럼 한번 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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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크리스마스 설레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행동하는 것들이 있다. 집 어딘가에 있을 꼬마전구의 위치를 가늠하고, 캐럴을 찾아 듣기 시작한다. 오렌지나 사과, 계피 같은 것을 넣고 끓인 뱅쇼를 나눠 마실 친구들의 얼굴도 잠시간 떠올린다. 사실 나는 크리스마스보다 그런 시간들을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이혜인 포토그래퍼 최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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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한다. 9살 때인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양말을 걸어놓고 잤는데 그곳엔 선물이 없었다. 대신 양말 밑에 종이봉투가 있었고, 그 안에 노란 피카츄 벙어리장갑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내복을 입은 채 이불 위를 방방 뛰었다. 이걸 끼고 학교에 가면 멋으로 반을 평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란 털 위에 얼굴만 덜렁 달려있는 귀여운 피카츄…. 그런데 얼마 안 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인데, 선물이 담겨 있는 종이봉투엔 2001·아울렛이라는 초록색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엄마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킴스에서 산 거야?” 엄마는 웃기만 할 뿐 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크리스마스가 와도 양말을 달지 않게 된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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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맞게도 크리스마스의 설렘은 성인이 되어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9살 이후에 억눌려 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와 애틋함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항의하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11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설레발 DNA가 따로 있는 것처럼 날씨가 쌀쌀해짐에 따라 본능적으로 마음속 밑바닥은 가벼운 기포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가끔씩 머릿속을 치고 들어오는 장면들이 늘어났다. 거실을 늘 지키고 있던 고무나무 위 알록달록한 전구 하며, 스트리폼으로 만들어진 싸구려 오너먼트, 크리스마스 카드를 꾸미기 위해 썼던 반짝이풀들…. 그러한 것들을 마음속으로 나열하고 있으면 천진했던 지난날들이 생각나 자꾸만 헤픈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마스 하나로 살벌한 추위를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남의 생일을 챙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정작 내 생일은 ‘또 이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며 달가워하지도 않으면서…. 무교 주제에 예수의 생일은 몇 달 전부터 고대하고 축하하고 있으니, 울엄니가 알면 도로 나를 뱃속에 집어넣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이미 너무 많은 크리스마스를 보내온 것 같지만 이제라도 무엇을 축하해야 하는지 알고선 기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이 뭔데 한순간 세상을 반짝이게 하고, 나를 이렇게 들뜨게 만드는 것인가. 느닷없는 궁금증이 늘어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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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 즉 예수의 탄생일이다. 하지만 그 날짜가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은 3세기로 진입하면서 행해졌는데,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1월 6일, 3월 21일, 12월 25일 중 하루로 선택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날짜로 통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늠할 수도 없이 까마득한, 서기 350년, 로마 교회의 수장이었던 교황 율리우스 1세가 마침내 12월 25일을 탄생 기념일로 공식 선언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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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즐긴 건 아니었다. 3세기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건 이교적인 일이라며 비난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의 축제’라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당시 로마사람들은 여러 날에걸쳐 농신제가 열리면 음식과 포도주를 파는 곳만 빼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을 정도로 축제를 즐겼다고. 학자들은 로마의 동지를 축일로 이용해 예수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날은 빛의 신, 미트라의 탄생일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전에 먼저 역사를 알아보자고 했지만 이 글을 쓰는 당사자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서 도대체 그날은 누구의 생일이란 말인가! 아직도 그 문제를 두고 여러 의견이 있다고 하니,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정리는커녕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런 의문들을 다 떠나서도 크리스마스가 우리 인류에게 큰 의미의 날인 것만은 분명하다. 20세기 초엽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의 허리를 잠시간 끊어 놓은 것도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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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1. 레이먼드 브릭스 <눈사람 아저씨>
눈사람 아저씨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이 책은 팝업의 형태라서 더욱 특별하다. 마지막 장을 펼치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눈과 밤의 세계는 아직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알리는 것 같다.
2. 레이먼드 브릭스 <산타 할아버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산타는 신선하다. 궂은 날씨와 좁은 굴뚝을 보고 스스럼 없이 불만을 얘기하고, 목욕을 마치고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는 그냥 할아버지. 이 퉁명스런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온다.
3. 론 하워드 <그린치>
크리스마스를 증오하는 그린치로부터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을 이해하게 되는 영화. 다소 유치하지만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해마다 찾게 된다.
4. 뉴 키즈 온 더 블럭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이름만 들어도 옛 향수가 떠오르는 이 보이밴드가 크리스마스 앨범을 냈었다. 그들의 풋풋한 캐럴을 듣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흰 양말을 신고 춤을 추고 싶어진다. 되도록이면 아주 촌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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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5. LONDON IS THE PLACE FOR ME2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와 별다른 연관이 없다. 아프리칸 뮤지션들의 음악을 담았으니 오히려 여름과 닮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강렬하고 뜨거운 캐럴 말이다.
6.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굳이 따지자면 김승옥의 책은 크리스마스가 끝난 다음 날 같다. 아침이면 아스라이 사라지는 해무처럼 쓸쓸한 기운이 맴돈다.
7. 왕 가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 영화를 트리로 만든다면 가지각색의 열쇠와 보라색 전구로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나란히 앉아 블루베리 파이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한 쌍의 연인도 있을 것이다.
8. 허수정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만 봤을 때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으로 한 번 더 보니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누구에게나 다 같은 날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느 계절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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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레발 끝에 남는 것이 뭘까. 사실 크리스마스 당일이 오면 특별히 하는 것도 없다. 그냥 보통의 날처럼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요란했던 들뜸이 사라지고 남은 침전물들. 내일이면 문을 닫는 놀이공원의 마지막을 보는 것처럼 크리스마스는 나의 마음도 모르고 지나치게 반짝이고 아름답기만 하다.
아주 오래된 꿈이지만, 언젠가 산타 마을이라 불리는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싶다. 어쩐지 그 마을에 가고 나서야 나의 오랜 들뜸이 끝이 날 것 같다. 이 요란한 마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를 나중으로 미루는 것처럼, 로바니에미는 아주 한참 뒤에나 찾아갈 것 같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올해도, 내년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이 설렘을 안고 살 수밖에 없겠다.
어쩔 수 없이, 올해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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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 드시나요?
설렐 만한(?) 소식 한 가지 전할게요. 이 원고를 쓴 이혜인 에디터가 다시 돌아올 컨셉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97호 제작에 참여해줬어요! 편집장으로서, 깊이 있으면서도 위트 있는 그녀의 글을 참 좋아했는데요. 컨셉진 독자분들과 오랜만에 그녀의 글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조금 설레더라고요.
멈췄다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만큼 속도가 안 따라줘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기다림을 드리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신 아쉽지 않을 만큼 더 정성껏 준비해볼게요. 6년 만에 복귀하는 이혜인 에디터 외에 오랜만에 다시 등장하는 에디터들의 이름을 조만간 만나게 해드릴게요. 새롭게 변화될 컨셉진 97호로 다시 만나요!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편집장 김경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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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달려온 컨셉진은 올 한 해 휴간 기간동안 컨셉진을 발전시키면서 또, 컨셉진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 하고 있어요. 이 중 하나로 누구나 컨셉진 한 권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만을 담은 컨셉진 책자를 만들어 보는 ‘나만의 컨셉진 캠프’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어요.
6주 동안 저희가 매주 드릴 안내에 따라 저희가 준비한 곳에 사진이나 글만 넣어주시면 저희는 그걸 모아 당신을 담은 한 권의 컨셉진으로 만들어 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을 인터뷰하고, 당신의 취향을 찾으며, 당신만의 삶의 컨셉을 찾고 소중한 책자로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입니다.
‘나만의 컨셉진 캠프’는 내년에 유료 상품으로 출시될 예정으로, 이번에 컨셉진 구독자 분들 중 30분을 모시고 무료로 베타 체험단을 진행하려고 해요. 소중한 피드백을 받아 내년에 더 많은 분들이 컨셉진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게 발전시키겠습니다.
평소 컨셉진을 보며, 이 책 한 권을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로 담아보고 싶었던 분이 계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신청이 완료되면 아래 링크는 닫힙니다. 완성된 책자는 면접이나 미팅 시 매력적인 자기소개 책자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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