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진 레터 ISSUE.03 안녕하세요. 컨셉진 편집장 김경희입니다. : ) 7 월의
끝에서 세 번째 레터로 인사드립니다. 오늘
레터의 제목은 매달 여러분께 새로운 주제로 찾아갔던 ‘질문’으로
시작해봤는데요. 오랜만에
컨셉진에게 받은 질문이 여러분의 오늘과 주말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컨셉진에서 VIEWPOINT라는 코너를 알고 계시나요? 매달 독자분들께 질문하여 독자 참여를 제안하고, 메일을 통해 받은 사연 중 20개를 뽑아 소개하는 기사인데요. 이 칼럼은 컨셉진이 종이책으로 발행된 11호부터 96호까지 쭉 이어져 온 ‘최장수’ 코너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듣는다는 의미로 VIEWPOINT라는 칼럼명을 짓고 20개의 사연을 담았는데, 사실 이 코너는 40호까지 THIRTY ONE이라는 이름으로 31개의 사연을 담는 코너였어요. 배스킨라빈스의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하여 THIRTY ONE으로 이름 짓고 정말 31개의 사연을 담아 소개한 거죠. (이 얘길 쓰다 갑자기 떠오른 건데, 그 당시 배스킨라빈스에게 협업 문의를 해본 적도 있었네요!ㅎㅎ) 하지만, 41호 개편을 할 때 31개의 사연을 담는 게 모집하기도 힘들고, 너무 많아 읽기도 힘들다는 의견이 있어 20개로 조정하고 VIEWPOINT라는 이름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31개에서 20개로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분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컨셉진을 읽고 나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기분이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리뷰가 많더라고요. 저는 이 코너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지금 시작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라는 질문은 <컨셉진 23호>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질문에 저마다 시작하고 싶은 것을 답했던 서른한 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31개의 사연이다 보니, 좀 길어요. 여러분 시간 되실 때 천천히, 느긋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THIRTY ONE 누군가의 시작 당신이 지금 시작하고 싶은 것. 에디터 김경희 일러스트레이터 박진영 하나. 평일, 주말, 밤, 낮 없이 일만 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노는 것’에 대한 감을 잊어버렸다. 아주 가끔 휴식 시간이 생길 때면 뭘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만큼 노는 걸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잘 놀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는 이제 ‘놀 거리’ 리스트 업을 시작해보려 한다. ‘어느 곳에 가면 좋다더라, 이렇게 놀면 재밌다더라’ 하는 것들을 서치하거나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들을 잊지 않고 기록해두면 시간이 날 때마다 ‘뭐 하고 놀지?’하는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이지민, 30세) 둘. 시작은 언제나 설레면서 두렵다. 항상 시작하기까지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막상 시작하면 별일이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지금 시작하고 싶은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길 바라고 있다. 바로 낮과 밤이 없는 생활의 시작이다. 누구에는 선명한 낮과 밤이 고통이 될 때가 있고, 누구에는 불투명한 낮과 밤이 고통이 되는데, 취준생인 나에게는 선명한 낮과 밤이 고통이다. 일에 치이고 붙잡혀 낮과 밤의 의미가 없어지는 일상의 시작을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다. (김수민, 24세) 셋. 나는 사계절 내내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기도 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밀크티를 끓여 먹기도 한다. 매번 무언가를 마실 때 컵을 다르게 해서 먹곤 하는데, 그러면 기분이 새롭고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때마다 어울리는 컵을 고르는 재미도 있고. 그러다 보니 컵을 조금씩 수집하게 됐는데, 언젠가는 이 컵들과 잡화를 파는 작은 가게를 열고 싶다. 물론 컵에 어울리는 계절 음료도 곁들여 파는 가게였으면 더더욱 좋겠다. (송낙희, 26세) 넷. 1년간 프리랜서로 지내며 온전히 작업을 위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방에서의 작업은 공과 사가 전혀 분리되지 않아 집중을 하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불규칙적인 삶도 한몫했다. 작업실에 대한 갈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갔고 2015년 새해, 작업실을 꼭 만들겠다고 다짐을 했다. 얼마 전 호시탐탐 눈여겨보던 곳과 통화를 했고 3월, 봄의 시작과 함께 나만의 공간이 생길 예정이다. 작업실 인테리어를 찾아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 오늘, 꽃 피는 3월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박진영, 26세) 다섯.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20대 중반부터 늘 꿈꾸던 삶이 있었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시골에서 낮에는 조그마한 농장에서 밭을 일구고, 밤에는 아담한 작업실 겸 집에서 음악과 함께 도예 작업을 하고, 휴일에는 마당에 작은 야생화 꽃밭도 가꾸며 강아지와 느긋하게 산책도 하는 삶. 7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난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사 와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꿈꾸던 삶을 위해 첫발을 내딛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에 감사하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 나가는 이 과정 또한 값지고 즐거운 일이다. (박민지, 32세) 여섯. 짧은 연애 끝에 이별이 찾아왔다. 다시는 연애를 못 할 것 같았던 내가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 만난 지 100일도 안 됐지만, 나는 이 사람과의 결혼을 꿈꾼다. 나를 한없이 편하게 해주는 이 남자. 내 모든 습관과 고집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이 남자와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한다. (김현경, 25세) 일곱. 20대 초반 때만 해도 하나만 배워도 둘을 알 수 있었기에, 언제든 맘만 먹으면 금방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외국어 공부. 어느새 둘을 배워도 하나를 잘 모르는 20대 후반이 되니, 조금 더 미루면 더욱 벅찰 거란 느낌을 받는 현재. 조금 더 글로벌하게 살아가기 위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당장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승환, 28세) 여덟.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 없이 시작해 봤겠지만, 나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없었던 연애 사업을 올해는 꼭 시작해보고 싶다. 주변 사람들에겐 흔하디흔한 일이지만 슬프게도 나에겐 단 한 번의 기회도 없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던 중 최근에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것은 바로 게으름 때문이었다! 동성 친구들끼리 만나는 편한 자리조차 풀 메이크업을 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난 항상 쌩얼에 추레한 모습으로 나가곤 했다. 칙칙한 겨울에서 상큼한 봄으로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나도 이제 칙칙한 나와 이별하고,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과 풋풋하고 싱그러운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 (박소은, 25세) 아홉. 어린 시절 투닥투닥 놀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8반까지였던 학교에 사고뭉치인 우리를 모아 9반을 만들어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공부의 필요성과 즐거움을. 그 후로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공부를 피해 가는 일들만 해왔다. 이를테면 쇼핑몰, 길거리 노점상, 패션모델과 같은 감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들 말이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던 내가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20대 후반이 되어서 말이다. 여러 직업을 선택하면서,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해왔던 일들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공부를 시작했다. ‘공인중개사’라는 멋진 공부다. 이제 막 어른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 해보는 공부에 나는 가슴 뛰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 (한유진, 29세) 열. ‘직장생활’이라는 대답은 너무 따분하게 들릴까? 사실 나도 기타, 발레, 여행 등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을 선택한 이유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취업을 준비하는 ‘백수’이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까? 백수에게 직장생활은 남북통일을 능가하는 간절한 염원과도 같아서, 하루빨리 그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직장과 자신의 일을 갖는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분명 즐겁기도 하지만 어려움의 연속일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 견뎌줄 테니 얼른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싶다. (취준생, 29세) 열하나. 어떠한 ‘순간’, 어떠한 감정이 물 위로 떠오른 그 ‘순간’, 혹은 ‘생각’. 또는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해서 느낀 그 ‘무엇’들을, 생생한 그 순간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나는 얼마 전부터 그런 ‘순간’에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들었다. 대화를 나누며 그 누군가의 생각을 듣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에 가까운 사람은 누굴까. 아마도 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바로 ‘남자친구’ 말이다. 아, 이제는 진짜 ‘연애’가 하고 싶다. (김지선, 24세) 열둘. 나름의 생각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열정은 갖고 걸어왔다 자부했었다. 그만큼 나에게 확신이 있었고 후회가 없었다. 내가 겪는 지금이모두가 겪었던 그때이지는 않을까. 세상과 타협하려는 나에게서 꿈과 낭만은 말 그대로 ‘꿈’으로 남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부딪쳐 왔던 선택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올해의 나의 시작은 선택이다. 다짐이고, 더 이상의 의문은 품지 않을 나의 시선이고, 돌아오지 못할 방향이다. 이 어떤 한 걸음이 나에게 있어 ‘재’시작을 말할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알릴지는 천천히 올해를 경험하며 정해야겠다 생각한다. 이미 경험을 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 물론 술과 함께. (박군, 28세) 열셋. 하루 종일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살다 보니 ‘이러다 근육이 소멸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 외엔 운동량이 너무 없으니 말이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자꾸 살이 붙는 것도 같고…. 그래서 이제는 운동을 시작해 볼까 한다. 사실 이 마음을 먹은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작심 3일인 내가 과연 꾸준하게 운동할 수 있을까?’ 하는 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시작을 못 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그 반이 참 어렵고 어렵다! (김미진, 28세) 열넷. 무용수로 15년 넘게 춤을 추다가 ‘또 다른 재미있는 인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시작한 것이 재봉이었다. 재봉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7개월이 되어 간다. 무작정 배우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내가 키우는 반려견 세 마리를 위해 예쁜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싶다는 게 큰 계기가 되었다. 배우다 보니 애견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배우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다. 꿈을 꿈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이지선, 35세) 열다섯.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으로,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것이 올해 나의 목표다. 몇 년 동안 생각했던 제과제빵 자격증을 올해에는 꼭 취득하여 친언니와 함께 공방에서 함께 일할 날을 기대해본다. (최은선, 29세) 열여섯. 월말이 되고 달력을 넘기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아서 아쉬움을 느낀다. 2년 전 오늘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짧게나마 그날 뭘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그렇게 일기를 쓰다 보면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모여 나만의 책이 한 권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다나, 25세) 열일곱. 얼마 전 우연히 가죽 공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 언젠가 꼭 배우고 싶었던 가죽 공예.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에는 늘 이것저것 배우고 싶었고 적극적으로 배우러 다녔다. 하지만 일에 빠져 사는 요즘은 새로운 무언가를 습득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배움을 멀리했다. 문득 빠르게 지나가는 나의 20대가 안쓰러웠다. 열정적이던 그때처럼 열심히 배워 먼 미래에는 내 가죽 공방을 가지고 싶다. (오세원, 28세) 열여덟.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언제로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는데 난 주저 없이 고등학교 때라고 대답한다. 유달리 남들보다 그 시절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인데, 점심시간이면 친구들과 학교 안 과수원으로 향해 몰래 자두와 사과를 따 먹은 기억, 친구들과 담을 넘다가 치마가 찢어진 기억, 늘 똘똘 뭉쳐 다니던 친구들과의 기억 모두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지금 우린 너무 무뎌졌다. 가끔 고향으로 내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날 때면 “연락할게!”라든지 “뭉쳐야지!” 하는 예의상의 ‘말’만 주고받는다. 지금은 싸워서 멀어진 친구도, 귀찮다고 나오지 않는 친구도 있지만, 늦은 새해 인사라도 전하면서 연락을 돌려야겠다. “서른 살엔 우리도 엄마들처럼 꼭 하자” 했던 계 모임을 앞당겨 조금은 이른 계 모임을 시작해보고 싶다. (홍보라, 24세) 열아홉. 당시 혼신을 다해 찍었던 내 대학 졸업 사진은 몇 년째 메모리 카드에만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전에 따라 (나의 게으름에 따라) 나의 20대가 모두 메모리 카드에만 저장됐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초조함에 올해부터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나를 필름 카메라로 찍어 무조건 인화할 계획이다. 급한 대로 퇴근 길에 일회용 카메라도 샀다. 지금 이 자신감과 내 남은 20대가 메모리 카드를 벗어나 다시 필름 통에 갇히는 불상사는 없길 바라며! (이지혜, 27세) 스물. 내가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은 것은 ‘여행’이다. 좋아서 선택했지만, 지금은 나를 지치게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공기를 마시고 처음 본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것을 통해 내 삶에 쉼표를 주고 싶다. 떠난다면 즐겨보는 중화권 영화의 배경인 홍콩이나 대만을 가겠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카톡 프사에 걸만한 내 인생 사진도 한 장 건지고 싶다. (김재영, 28세) 스물하나. 올해 휴학을 했기에 지금 시작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연필 수집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연필을 좋아했다. 연필의 ‘쓱-’ 하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는 거다. 정작 고등학생 때는 ‘쓱-’ 하는 소리가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될까 봐 샤프만 썼는데,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연필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는 여러 가지 연필을 수집해보려 한다. 휴학 중에 많은 곳을 여행하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가는 곳마다 기념으로 연필을 사 오면 정말 다양한 연필이 모일 것 같다. (안선주, 24세) 스물둘. 20대의 끝자락에 유럽여행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럽 여행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될 것 같아 1월부터 조금이나마 자금을 모으고 있다. 어디서든 사진만 찍으면 그림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디저트를 먹을 수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는 유럽.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꼭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생겨 서른이 되기 전에 유럽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고승아, 29세) 스물셋. 북경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유학생이다. 10년째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삶의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주위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너무 익숙한 곳이지만, 이곳에 대해 막상 아는 것이 없어 누가 중국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10년간 쌓인 내공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곳을 파헤쳐 보고 싶다. 그리고 그곳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다. (김재연, 26세) 스물넷. 장롱면허 소지 7년 차. 도무지 운전할 기회도 없었지만, 겁이 많아 선뜻 도전하지도 못했다. 7년 전에 운전면허는 어떻게 땄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동안 주민등록증 대신으로만 사용했던 나의 면허증을 이젠 제 역할을 하게 해주려고 마음먹었다. 괜히 운전을 시작했다가 어디 가서 사고만 내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욕을 먹을 것 같은 두려움이 스치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시작해보련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친구들에게 드라이브시켜줄 그 날을 상상하며. 가끔은 남자친구의 대리운전 기사가 되어 줄 그 날을 상상하며. 심호흡 길게 하고 출발! (김지영, 30세) 스물다섯.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로망,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백수다. 말 그대로 말갛고 하얀 손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해보고 싶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한다는데, 나는 일개미처럼 일만 열심히 하면 서 20대를 보내고 30대를 절반이나 보냈다. 이대로 눈 깜박하면 마흔 살이 될 텐데, 너무 억울한 청춘이지 않나? 서른여섯이 되는 올해, 백수가 제일 해보고 싶다. (일개미, 36세) 스물여섯. 최근에 혼자 영화를 봤다. 매 장면을 훔치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영화였다. 이럴 때면 낡은 노트북을 꺼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고 싶어진다. 한때 영화를 꿈꾸었지만, 광고를 연출하고 있는 지금. 멋진 영화를 볼 때마다 잊고 있던 시나리오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른다. 영화관을 나설 때면 어느새 허구의 인물들이 내 머릿속에서 울고 웃고 싸우고 또 화해한다. 하지만 그 열망은 일에 밀려 금세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쓰다만 글들이 컴퓨터 휴지통에 가득 차있다. 지금 시작하고 싶은 게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이번에야 말로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해 보리라고. (김두원, 30세) 스물일곱. 모르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을 시작으로 여기는 건지, 나에게 시작은 배움의 의미가 있다. 얼마 전 아는 언니와 ‘지금 하는 일 말고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일이 있느냐’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언니와 나 모두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언니는 피아노, 나는 작곡. 한 번도 “저는 작곡가가 꿈이에요”라고 말해본 적 없지만, 늘 음악을 만들어내는 누군가에 대해 동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지금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면 작곡의 기본이 될 수 있는 피아노부터 배워보고 싶다. (성연주, 25세) 스물여덟. 나는 매년 목표를 세우는데, 스물여섯 살 취준생이 된 올해의 목표는 기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서 나 자신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언제쯤 방긋방긋 웃는 게 습관처럼 될까? (배주영, 26세) 스물아홉. 좋아하는 일이 직업인지라 업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데, 요즘 들어 일이 몰리다 보니 업무 스트레스를 처음 느끼게 됐다. 무슨 노래를 들어도 감흥이 없고 무얼 보아도 영감이 떠오르질 않았다. 과부하가 걸린 건지 아무래도 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들판에 누워서 하루 종일 하늘 보고, 해 질 녘에는 바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노을 보고. 인위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떠나 온전히 자연으로부터의 것을 느끼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최모레, 25세) 서른. 나는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해 근 3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동생이 언니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며 인큐스쿨이라는 수업을 추천해 주었다. 동생은 수업 모집공고가 뜨자 공고가 빨리 마감되니 어서 신청하라며 닦달을 했다. 이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큐스쿨의 첫 수업을 들었다. 인큐스쿨 수업은 다양한 인풋 수업과 핵심감정, 본능 게임, 퍼스널 케어 등으로 내게 많은 깨달음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다음 주면 마지막 주차가 진행된다. 퇴사 후 새로운 시작이었던 인큐스쿨 수업은 신선한 환경과 좋은 사람들 그리고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나에게 인큐스쿨은 사주보다 더 나를 잘 알게 해준 수업이었다. (오혜림, 30세) 서른하나.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입력봉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 맡은 일은 책 스캐너가 미처 잡지 못한 오류를 체크하고, 입력 부호에 맞추어 타이핑을 하는 일이다. 타이핑한 파일은 다시 점자로 번역하는 단계를 거쳐야 점자책이 되는 긴 과정이 끝난다. 매주 복지관을 나설 때면, 아직 남은 과정이 있는데 완성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싶어 안타깝다. 쏟아져 나오는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보다 빨리 ‘만질’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에라도 점자 공부를 시작하고 싶지만 준비하는 시험 때문에 마음만 뻔한 나는 점자가 보일 때면 눈을 감고 만져보곤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숫자라도 익숙해져서 언젠가 점자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날, 금방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는 마음을 담아서…. (김민선, 24세) 다양한 시작을 하고 싶은 분들의 몽글몽글한 이야기 잘 읽어보셨나요? 서른한 개의 시작 중 유독 여러분 마음에 들어온 시작이 있나요? 저는 모든 이야기가 좋지만, 열 번째,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를 뽑고 싶어요. 한 분은 취준생이라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한 분은 일개미라 ‘백수’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죠(공교롭게도 서른한 분 중 딱 이 두 분만 본인의 이름이 아닌 가명을 적으셨네요). 그 당시 메일로 받은 사연을 모으다 이 두 사연을 보고 눈물이 왈칵했어요. ‘시작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하나의 질문에 이렇게 상반된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아…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거든요. 한편으론 ‘그래, 이런 이야기를 담으려고 컨셉진이 있는 거지!’ 하는 자부심도 생겼죠. 실제로 이 두 사연은 제가 컨셉진 개편을 수차례 하면서도 없애지 않고 뚝심 있게 유지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제게 컨셉진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너를 뽑아 달라 하면, 저는 고민의 여지 없이 이 코너를 뽑을 거예요. 문득 여러분께도 묻고 싶네요. 여러분은 컨셉진에서 어떤 코너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아니, 다시 물을게요. 여러분은 왜 컨셉진을 좋아하시나요? 어려운 질문을 남기고 오늘의 레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컨셉진 레터와 함께 이번 주말도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편집장 김경희 드림 Ps. 혹시 이때 이 사연을 작성해주신 두 분이 이 레터를 보고 계신다면, 메일로 소식 좀 전해주세요! 제가 이 코너를 더 사랑하게 된 이유를 만들어주신 두 분께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지난 뉴스레터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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