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집장 김경희입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보다 날씨가 많이 청명해져, 여름다운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터와 함께할 이번 한 주도, 여러분만의 여름다운 여름을 보내시길 바랄게요! 😊
이번에 소개해드릴 콘텐츠는 TO LIFE라고 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투 라이프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당신의 라이프를 위한(to), 두(two) 가지 삶'이란 뜻으로, 매호 주제과 관련된 두 명의 인물 혹은 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인데요. 매호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독자 여러분께 인사이트를 드리는 코너이다 보니, 컨셉진 내에서는 나름 '메인' 기사라 생각하고 진행합니다.
여러분께 투 라이프 인터뷰 중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싶어, 컨셉진의 모든 호들을 살펴보다가 '아, 맞다 이런 인터뷰가 있었지!' 하고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보려 합니다.
'언어'를 주제로 한 컨셉진 50호에서 진행했던, 청각장애인 최형문 님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아래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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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노래
작지만 분위기 좋은 수원의 카페에서 한 청년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내가 카페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자기 일에 푹 빠져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최형문. 귀가 들리지 않는 걸 뜻하는 데프‘Deaf’와 최형문의 문‘Moon’을 합쳐 데프 문‘Deaf Moon’이란 이름으로 유튜브에서 활동한다. 틈틈이 시간이 될 때마다 동영상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첫인사를 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꺼내 오늘의 인터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적었다. 에디터 문주희 포토그래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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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기 전 컨셉진 내에선 청각장애가 있는 최형문과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할지 회의가 열렸다. 질문지를 보내 서면으로 진행하자니 답변하는 최형문의 감정을 놓치게 될 테고, 감정을 담기 위해 동영상을 찍자니 인쇄 매체인 잡지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의 감정을 생생히 볼 수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법을 고민한 끝에 찾은 방법은 직접 만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맞대고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며, 질문한 나의 감정도 전달하고 답변하는 최형문의 감정도 바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서로의 노트북에 대화창을 크게 띄우고,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인터뷰 방식이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가 질문을 읽고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엔 인터뷰를 어떻게 하려나, 그 과정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문 수어통역사를 붙여 주시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렇게 해보는 건 처음인데 재밌네요.” 다행이다. 나 역시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이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 됐는데, 밝게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걸 보니 이 방식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경기도농아인협회에서 농아방송 앵커 및 영상 편집을 담당한다는 최형문은 어엿한 직장인이다. 회사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니 입사한 지 두 달 정도 되었고,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요즘은 곧 있을 큰 수어경연대회 준비로 정신이 없다고. 석달 전, 그는 대기업 통신사에서 서류 검사하는 일을 했다. 정해진 시간 내 처리하는 서류량에 따라 실적이 결정되는 일이 었다. 활발하고 활동적인 성격에 가만히 앉아 기계처럼 하는 업무를 해야 하니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유튜브를 하게 된 것은 그때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였다. “전 회사에서 실적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러던 중 옥상달빛의 노래 ‘수고했어, 오늘도’의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늘 응원해, 라는 가사가 와닿더라고요.” 이에 위로받은 최형문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수어로 노래를 표현했다. 이를 혼자만 느낄 것이 아니라 취업, 직장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 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게 되었다고.
지금까지 데프문에 올린 수어 노래는 총 열일곱 곡. 그 리스트는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정인, 윤종신 ‘오르막길’, 박원 ‘노력’ 등 대부분 잔잔하고 조용한 노래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곡을 선정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 물었다. “손으로 가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까 힙합처럼 빠르거나 영어가 많은 노래는 수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솔직히 전 신나고 재밌는 힙합을 좋아하는데, 힙합을 수어로 표현하려면 제 손도 무척 빨라야 하고... 조금 힘든 부분이 있죠. 그걸 하다가는 살이 다 빠질 것 같거든요.” 이 리스트에는 사람들의 신청곡도 있다. 영상에 댓글로 신청곡을 쓰면 그는 잘 적어 뒀다가 새 동영상을 만들 때 참고한다며, 독자들이 신청하는 곡을 되도록 다 시도해 볼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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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만들 때면 모든 부분에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공간 분위기, 표정, 머리스타일, 의상 등 동영상에 보이는 모든 요소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다 보니 어느 한 곳에만 신경 쓸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은 다채롭고 풍성한 표정으로 하는 수어일 것이다. 애절한 노래 가사와 그의 손짓, 표정에 눈물이 난다는 사람이 있다고 할 만큼 동영상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울린다. 그의 바람처럼 이를 보고 위로받고 힘낸 사람들이 하나 둘 댓글을 달았다. “언제나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힘들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 영상입니다.”, “세상 스윗하시네요... 너무 잘하세요. 보면서 울었네요.”, “풍부한 표정 때문에 뮤비를 보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등등.
대체 어떻게 노래를 이해하고 박자에 맞춰 수어를 하는 걸까. 이를 물어보니 그는 오히려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혹시, 클럽 가 본 적 있나요?” 하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에서 음악을 크게 틀면 스피커가 울리잖아요. 그때 진동이 느껴지죠. 그게 제가 음악을 느끼는 부분과 비슷해요. 영상을 만들 땐 아예 그 진동의 박자를 외워버려요.” 최형문은 일곱 살 때까지 소리를 들었다. 심한 열병을 앓다가 달팽이관이 손상되면서 그 이후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의 귀엔 보청 기가 끼어 있다. 이는 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써 역할을 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는 보청기로 약간의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의 청력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노래 한 곡을 수어 노래로 만드는 과정이 처음엔 정말 쉽지 않았단다. 최형문의 3분짜리 첫 동영상 ‘수고했어, 오늘도’가 한 달이 걸린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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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문은 그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시작은 방송에 나오는 가수의 입 모양을 구체적으로 보는 거예요.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기 전 반주가 몇 초인지 세어두고, 어떤 박자로 노래가 흐르는지 파악해요. 이 부분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뮤직비디오를 보며 가사 내용을 해석하고, 뒤에 익힌 것들을 실제로 해봐요. 핸드폰으로 촬영하며 해보고 또 촬영 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제일 마지막엔 소리를 듣는 청인 친구에게 부탁해 박자가 맞는지 봐달라고 해요. 시작한 지 27일이 지나자 수어와 박자가 맞고 가사의 감정 전달이 완벽해졌어요.” 동영상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들어보니 그에겐 수많은 의지가 필요했겠구나 싶었다. 동영상을 만들 때 이 과정을 매번 반복하는지 물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짧은 질문에도 모니터 가까이 얼굴을 대고 꼼꼼히 읽고 난 후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동안 연구를 많이 해서 이젠 일주일에 한 번 올릴 수 있게 됐어요. 기적 같은 일이죠.” 그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를 동영상을 좋아해주고, 기다려주는 구독자들이 있어서 요, 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판을 꾹꾹 눌러가며 내게 메시지를 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다가오면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렇게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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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제가 청각장애인이라 노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전 이렇게 수어 노래하는 걸 도전하고 있잖아요. 만약 도전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유튜브를 시작한 후 강연 섭외도 들어오고 사당, 안양, 대전 등에서 수어 강사로도 활동하게 되었다는 최형문은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고. 최형문은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친척들의 시선이에요. 제 친척은 스물다섯 명이 넘는 대가족인데, 그 속에서 전 취직하기 힘든,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절 선생님으로 바라봐요. 실제로 수어 관련 대학원에 가기 위해 준 비 중이기도 하고요.” 1년 전 수어는 한국의 언어로 인정되었다.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는 많은 국가에선 이미 수어를 의무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는 다른 나라처럼 사람들이 점차 수어를 이해하고,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농인이라 좋은 점이 시끄러운 곳에서도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푹 잠들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병원이나 은행 업무에서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그러면서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는 점도 아쉬워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부모님께 효도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바른 청년 최형문은 부모님과 말로 대화하지 못 하는 걸 그 무엇보다 아쉬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반면, 최형문이라면 그 부분 역시 지금 스스로 살아온 것처럼 점차 극복해나갈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했다. 목표한 것은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고 하니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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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충분히 대화하지 않는 내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충분히 말할 수 있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가 있으니까. 난 인터뷰 내내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유튜브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최형문에게 대단함을 느꼈다. 그 대단함은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수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자연스러운 언어일 뿐이다. 거기엔 어떤 불편한 시선도 선입견도 가질 필요가없었다. 다만 내가 느낀 대단함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의지였다. 평소 힘이 들면 ‘지금까지 해왔잖아, 한 번만 더해 보자.’라는 말로 힘을 낸다고 했다. 촬영할 때 박자를 놓칠 경우에 특히 그렇다며 웃었다. 데프문을 통해 수어 노래 외에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고, 끼가 많은 농인을 위한 소속사를 만들고 싶다는 다부진 꿈을 가진 최형문. 그 역시 포기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내며, 지금처럼 우리에게 어떤 것이든 천천히 길게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만의 손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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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청각장애인의 '수어'를 다룬 것, 또 그 인터뷰를 진행한 방식에 있어 '컨셉진다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 관심 갖지 않았지만, 멈춰 서서 붙잡고 제대로 보여주면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 컨셉진다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앞으로의 컨셉진도 '컨셉진다움'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그동안 최형문 님도 최형문다운 행보를 이어오신 것 같더라고요.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데프문'을 검색해보니, 7천여 명의 구독자와 함께 수어를 이야기하고 계시더라고요. 반가운 마음에 링크를 가져왔습니다. 인터뷰를 읽으시고, 이 유튜브를 살펴보신다면 그 감동이 더욱 생생할 듯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컨셉진 레터와 함께 여러분다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랄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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