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집장 김경희입니다.
오늘부터 즐거운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분들, 또 혼자 계신 분들 모두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바랄게요.
오늘도 '컨셉진에 이런 코너가?'라는 생각이 드는 코너를 소개하려 합니다. 컨셉진을 오래전부터 읽고 계신 독자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비교적 최근에 접하신 분들은 처음 보는 코너일 거예요. 바로 '연애의 온도'입니다.
'연애의 온도' 코너는 컨셉진 11호부터 70호까지 진행한 코너로 매호 첫사랑, 비밀 연애, 고백, 이별, 장거리 연애, 재회 등 연애하며 겪는 다양한 주제로 연애 에세이를 연재했어요. 저희 에디터가 직접 자신의 연애사를 꺼낸 적도 있고, 태재 작가님, 좋은비 작가님, 하현 작가님 등에게 기고 받은 적도 있어요.
마침 지금의 가을 날씨와 잘 어울리는 컨셉진 연애의 온도 원고 몇 편을 소개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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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유별난 사람이었다. 데이트 중에 꼭 색다른 에피소드 하나는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다이내믹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던 사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그의 말을 여느 남자들의 입바른 소리라고 치부했던 나에게 그는 보란 듯이 자신의 말을 몸소 실현했다. 그와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는 ‘하나, 둘, 셋’ 하면 기억에 남는 대사를 동시에 외치는 과정이 필수 코스였다. 또 한복 데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전주 한옥마을의 한 한복 매장에서 갓 하나와 남자용 두루마기를 나에게 건네며 본인은 흰색 저고리와 연분홍색 치마를 들고 수줍게 탈의실로 들어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면 항상 “오늘은 이거 하자.”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는데, 그날은 장마철이라 비가 아침부터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는 나의 우산을 뺏어 들더니 “오늘은 그냥 비 맞는 날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의 당황스러운 제안에도 내가 항상 고개를 끄덕이는 건 추억할 게 생긴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회상할 무언가가 있다는 뿌듯한 느낌 같은 거 말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신기하기도 했고. 그는 똑같은 디자인의 우비 두 개를 나에게 건넸다. 포장 봉투에는 어린이용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쓰여 있었다. “이것도 계획된 거야?”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아니, 이건 나도 당황스러워.”라고 답했다. 등치가 꽤 있는 사람이라 어린이용 우비를 입고 있는 모양새가 불편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우비에 대충 몸을 끼워 넣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흠뻑 젖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손잡은 채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비틀면 물이 한 바가지 나올 만큼의 잔뜩 젖은 옷과 축축해진 신발은 이미 걱정 밖이었다. 그가 갑자기 우산을 펼쳐 영화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 우산 장면’을 따라 하지만 않았다면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그가 던진 제안이 비를 피하기 급급하던 나에게 비를 맞는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비가 미칠 듯이 쏟아질 때면 빗방울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떠서 잔뜩 찡그린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글 호은혜, 컨셉진 51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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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군대 첫 휴가를 나와서였다. 약속을 잡았다고 하니 대학 동기는 펄쩍 뛰며 뭐하러 그런 일을 하느냐, 설마 여태 미련을 두고 있는 거냐며 다그쳤다. 그런 마음으로 그녀를 불러낸 것은 아니었다, 동갑이면서 한 학번 선배였던 그녀는 내 20대 첫 여자친구였다. 우리는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성격 차이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그녀를 조금 더 알고 싶었고,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한창의 봄부터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연인이었다. 헤어지던 날 그녀는 내게 “왜?”라고 질문했고 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자취방으로 왔을 때 동기의 반응을 기억한다. “언제? 어디서? 선배가 그랬어?” 이에 짧게 대답했다. “한 시간 전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가 그랬어.” 동기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헤어진 뒤 한 학기 동안 우리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동아리를 탈퇴하고 군대에 갔다. 그녀에게 연락한 것은 군대에서 힘들거나 외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다시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핀잔을 주고받고, 서로에게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함께 해석하려고 노력한 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분과 분위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어쩌면 그녀 단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확신해버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한동안 잘 맞았으니까.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예전과 비슷하게 나를 대해주었다. 그녀의 그런 쿨함이 언제나 좋다. 덕분에 큰 어색함 없이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나와 그녀는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가끔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면서. 원래 이렇게 지냈어야 할 사람인지 아니면 한때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서로를 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로 남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좋은 거라면 그걸로 괜찮은 것 아닐까. 글 김진오, 컨셉진 55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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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눈빛이 흔들리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늘 나 뭐 변한 거 없어?”와 더불어 남자들을 괴롭히는 2대 난제. 그녀에게는 유독 많은 기념일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손을 잡았던 ‘스킨십 데이’, 처음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었던 “라면 먹고 갈래?” 기념일,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소개했던 ‘1등 남친 코스프레의 날’…. 그녀는 소소한 우리의 일상과 기억을 기념일로 만들어 추억했다(오히려 100일, 200일과 같은 단순한 숫자에 대한 기념일에는 무관심했다). 처음엔 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그녀만의 방법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르며 자칫 무료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연애였는데, 그러한 기념일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그때의 설렘과 서로의 의미를 되새겼다. 6월 23일 역시, 우리에게는 꽤 중요한 기념일이었다. 그날은 ‘쫄면 데이’였다. 매운 것을 아예 못 먹는 내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매운 쫄면을 함께 먹은 날. 그 뒤로도 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었지만, 그래도 쫄면 데이에는 그녀와 함께 분식집에 가서 쫄면 몇 젓가락을 먹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한 달 전부터 ‘쫄면, 쫄면’ 노래를 부르면서 이날을 기다렸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우리가 헤어진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6월 23일이 다가오면 쫄면의 그 알싸한 매운맛이 떠오른다. 너도 아마 한동안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말 우리의 쫄면 데이를 잊어야 할 것 같다. 그녀에게 이날은 앞으로 결혼기념일이 될 테니까. 친구에게 건너 들은 소식에, 혓바닥에 전해지던 쫄면의 매운맛 같은 통증이 가슴 한편을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의 쫄면 데이는 이제 안녕히.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 진심으로, 행복하길. 글 좋은비, 컨셉진 58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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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시 읽는 남자요.”라고 대답했다. 웃기지만, 그땐 그랬다. 생각해 보면 그 남자를 만난 후부터 생긴 이상형인 것 같다. 고작 스물둘 셋이었을까. 서울이 녹음으로 물든 어느 초여름. 성곡미술관에서 혼자 전시를 보고 나와 카페 테라스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초여름 공기는 선선했고 기분 좋을 정도의 적당한 바람이 불었다. 코를 박고, 가져온 책을 읽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 테이블에 어떤 남자가 시집을 읽고 있었다.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였다. 이상하게 그 모습에 자꾸 시선이 닿았다. 그는 시를 읽다가 이따금 책장을 덮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필사를 하는 건지, 감상을 적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무슨 내용을 쓰는지 궁금했다. 그때 나는 무슨 용기가 났던 걸까. 스물둘의 패기였나. 나는 영수증에 글을 써내려갔다. 처음 적은 글은 ‘심보선 시인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좋아하는데’였다. 쓰고 보니 너무 작업 멘트인 것 같아 지우고 다시 적었다. ‘시집 읽는 모습이 멋져요.’ 아우 느끼해. 쓰다 지우고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꽤 괜찮은 문구를 떠올렸다. ‘여름날의 시집을 좋아하세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카피한 나름 센스 있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 밑엔 내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짐을 챙겨 그에게 걸어갔다. 내가 영수증을 건넸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집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는 ‘둘’이라는 제목의 시가 나온다. ‘두 줄기의 햇빛, 두 갈래의 시간, 두 편의 꿈, 두 번의 돌아봄, 두 감정, 두 사람, 두 단계, 두 방향, 두 가지 사건만이 있다. 하나는 가능성, 다른 하나는 무(無).’ 그에게서 연락이 왔냐고? 그건 비밀이다. 국어사전에 쓰인 이상형의 뜻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그 시절, 나의 이상형은 ‘시 읽는 남자’였다. 글 이봄, 컨셉진 59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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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셨나요?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셨나요?
그리고 이 코너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컨셉진 초창기에는 앱도 발행했었던 것 아시죠? 앱에서는 이 코너의 원고를 청춘시대에 출연한 배우 신현수 님이 읽어주셨어요. 신현수 님의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연애의 감정에 더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어 신현수 배우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세요.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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